새마을구판장
와인은 참으로 호사스러운 취미일 것이다.
이른바 '단위알콜비용'으로 따지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술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상표가 한글일리는 만무하고, 영어면 다행인 수준이다. 뜻도 알지 못하는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등으로 된 이름을 외워야 한다. 또한, 그 이름을 들으면 생산지역과 포도품종이 생각나야 하고, 좋은 수확연도도 함께 알아두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한국에서 판매되는 가격을 암기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앞서 나열한 갖은 수고를 겪고나서도 현명하지 못한 소비자가 되고만다.
이런 노력이 필요한 취미를 한 푼이라도 아껴서 즐겨보겠답시고 구판장같은 곳에서 낑낑거리며 사들고오는 것은 어쩌면 모순적인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수고로움을 감내할만큼 와인은 맛있다. 그리고 와인을 전혀 모르는 아내도 값나가는 와인은 기가막히게 알아차리는 점에서 볼 수 있듯이, 비싼 와인은 더 맛있다. 게다가 같은 와인의 판매가격이 너무나도 천차만별이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두 병 가격에 한 병을 사면 화가 날 것같다. 그래서 이런 노력이 의미있는 것이다.
잠실에서 만난 친구에 이끌려서 이 곳에 가보게 되었다. 요즈음 아주 유명해진 곳이라고 한다. 지도를 검색해보니, 업태는 슈퍼마켓인데 후기는 와인 구입기로 도배되어 있다. "친절 개판", "저세상 친절(불친절하다는 말인줄 알았다...)"같은 한줄평이 신경쓰였다. 실상은 많은 점원들이 정말 친절했다. 와인 코너는 협소했지만, 한국에서 인기있는 것들 위주로 판매하고 있어서 구입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서울에서 찾기 어려운 가격의 물건들이 있었다. 진열상태는 조금 걱정됐지만, 회전율이 좋아서 몇 병 사보았다.
아내가 집을 비운 틈을 타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2020. 8. 5. 자양1동, 서울